영화 [소울], 모든 불꽃에게 보내는 찬가.
영화 소울을 보고 왔다. 꼭꼭, 보라는 권유에 못이기는 척했으나 사실 워낙 픽사 영화를 좋아하는 성격 탓에 설레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영화관을 찾았다. 마스크를 쓰고 띄엄띄엄 앉아 쥐죽은 듯했던 영화관에서는 흥겨운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며 조금 초라한 뮤지션이 등장한다.
영화는 삶에 대해 묻는다. 너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니? 라고. 갑작스럽게 주어진 우리의 삶은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지루하고 평범하기 그지 없으며 빛나는 시간들은 찰나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자신의 삶이 언제나 빛이 난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독특한 사람들도 존재하긴 하지만 말이다.) 때문에 나는 나의 삶이 이따금 매우 만족스러웠다가, 이따금 매우 지루했다가, 또 이따금 매우 비관적이었다.
어느 철학서에서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불완전한 존재라고 설명하였다. 때문에 우리는 고통이 있기에 즐거움이 있고, 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있는 모순적인 상황에 끊임없이 놓일 수 밖에 없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으니까. 그렇담 항상 생각의 꼬리물기가 언젠가 끝이 날 이 삶을 어떻게 구성해나가야 하는가? 로 도돌이표처럼 돌아오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직업에, 또 누군가는 돈에, 또 누군가는 사랑에 삶의 의미를 찾는다. 나 또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또 성취하는 것이 내 삶의 이유인 것처럼 살아 왔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목표를 찾아 헤매고 있다.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하고. 그러다 덜컥 무엇인지 모호해질 때면 끝없는 허무함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영화는 말한다. 물 속에서 바다를 찾는 물고기에게 여기가 바다인데, 왜 바다를 찾느냐고. 아마 내 삶의 불꽃은 걷기나 햇빛보기 일 수도 있다고. 삶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지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없다. 삶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내 삶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려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것이 아닐까. 우리는 소중한 불꽃같은 내 삶을 자꾸만 수단으로 전락시키기에 끊임없이 공허하고 쓸쓸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세상은 삶을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세상의 목표는 변화하므로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우리 또한 다시금 누구의 것인지 모를 목표를 위해 삶을 찬란히 불태울 것이다. 영화는 그래도 항상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같다. 당신은 그 자체로 불꽃이며 우리의 생은 그 자체로 목적인 것이라고. 사르트르의 말처럼 실존은 본질에 앞서니까 말이다.